일제강점, 분단, 전쟁, 유신독재...

파란만장한 역사의 시간을 살며 아이들의 동심에 건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한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주고받은, 따뜻한 마음과 치열한 사색이 잔뜩 묻어있는 편지모음집. 

가혹하고 미련할정도로 청렴소박한 삶을 살며 화려한 동화속나라가 아닌, 흔하디흔한 강아지똥,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름다운 동화를 많이 써낸 권정생선생의 사색의 흔적이, 또한 이오덕선생님의 사심없는 도움, 수십년을 이어지는 관심과 애정도 인상적.


삭막한 현대문명에서 한발 떨어져 이들의 삶을 통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하는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저자
권정생, 이오덕 지음
출판사
양철북 | 2015-05-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 이오덕과 권정생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3p.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아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빛 하늘 한 조각.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7p.

저 때문에 너무 염려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느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75p.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지만, 저도 아직 모기약, 모기장을 사용해보지 못했어요. 

건넛집 사택 권사님이 벌(땡삐)집에 불을 지르자 하시는 것을 간신히 말려 놓았습니다. 벌레 한 마리라도 없어서는 세상이 참 쓸쓸할 것입니다. 



187p.

이곳 요양원에서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 한 형제라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한솥의 밥을 먹으며 함께 자고 일어나는 환자들의 생활이야말로 그대로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길, 그리고 인간이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지는 길이 가장 현명한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함께 먹는 식탁은 네 사람입니다. 한가운데 놓인 반찬을 서로 아끼면서 먹다보면 언제나 남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남는 반찬은 똘래라는 개가 먹습니다. 필요 이외의 것은 절대 가지지 않을 때,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207p.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 



245p.

권 선생님 편지 보고, 그렇게 돈이란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끊어버리는 데서 아동문학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라 봅니다. 오늘날 우리 아동문학이 왜 이렇게 형편없이 저질이 되고 난장판이 되고 있는가, 결국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있고, 입신출세식 삶에 매여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참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모두가 깨치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 딱합니다. 동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아동문학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 새삼 생각해 봅니다. 



274p.

왜 사람은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하는지요? 가지면 가질수록 자꾸 불행해지는 것을 몰랐던 것이 이렇게 세상을 파멸에 몰아넣게 된 것이지요. 자유라는 것은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307p.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넘치지 않게 필요한 만큼 고루 나우어 쓰는 인간세상은 오지않는 것일까요? 제가 그토록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래도 잃지 않는 한 가지 오기는 자신의 값어치를 지키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값어치를 너무 헐하게 내던지고 맙니다. 왜 그토록 고귀한 자신을 물건처럼 상품으로 만드는지 안타깝습니다. 



346p.

서울 가 보니 모든 게 다 돈으로 이뤄지는 거뿐이고, 하나도 순리라는게 없어보였습니다. 어렵게 하는 건 싫고 모두 손쉽고 편한것만 찾으니 결국 싸우게 되나 봅니다. 



347p.

몽실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구나 싶어 더욱 서글퍼집니다. 이 땅의 북쪽에서는 월 4만원의 월급으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러워집니다. 어서 건강해져서 산속 깊은 곳에서 강냉이 심고 가난하게 살 수 있기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참교육도 이런 고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367p.

이오덕은 2003년 8월 14일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검사도, 치료도 받지 않았다. 마지막에 머물렀던 무너미 마을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일기를 쓰고, 시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371p.

하느님께 기도해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Posted by 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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